ai technology

생성은 저렴하고, 판단은 비싸다

Junyoung Park · 2026-08-03 · 15 min

미래는 내가 예상했던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 AI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고 세상을 완전히 뒤집는 장면을 상상한 적은 있었지만, 정작 내가 마주한 변화는 훨씬 조용하고 일상적이었다. AI는 먼저 내가 하는 일을 구성하던 경계들을 하나씩 흐리게 만들었다. 논문을 읽는 일, 코드를 작성하는 일, 모델을 학습시키는 일,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일, 보고서를 쓰고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까지, 과거에는 서로 다른 능력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하나의 인터페이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AI를 공부했고, 그 덕분에 AI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직업을 얻었다. 어떤 면에서는 시대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에 가깝다.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온 기술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 기술을 다루는 능력이 직업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AI의 발전은 내게 일자리를 가져다준 것과 동시에, 그 일자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었다.

한때 모델을 학습시키는 일은 꽤 높은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었다. 논문을 읽고, 구조를 이해하고, 데이터를 준비하고, 구현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학습이 실패했을 때 어느 부분을 의심해야 하는지 아는 데에도 경험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실행되지 않는 코드 한 줄이었겠지만, 그 안에는 데이터의 분포와 최적화의 특성, 모델 구조와 하드웨어의 제약이 함께 얽혀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다음 토큰을 예측하는 자동회귀 모델로 설명되던 LLM이 이제는 논문을 읽고, 코드를 작성하고, 오류를 수정하고, 실험 계획을 세우며, 또 다른 모델을 학습시키는 과정까지 돕는다. 잘 학습된 하나의 객체가 다시 학습의 장벽을 낮추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는 연구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AI 학습시키기’와 ‘실험 잘 설계하기’의 경계도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좋은 변화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구현 능력의 부족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기술의 민주화는 그 자체로 반길 만한 일이다. 연구자의 전문성이 단지 남들이 사용할 수 없는 도구를 다룬다는 사실에 기대고 있었다면, 그 전문성은 애초부터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불편함이 남는다. 기술의 장벽이 낮아진 만큼, 사람들은 기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까.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많아 보인다.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설명하면 더 그럴듯하게 보일지를 먼저 고민한다. 정확히 이해하는 것보다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졌고, 깊이 파고드는 것보다 새로운 도구를 남들보다 먼저 사용해보는 능력이 더 가시적인 성과로 평가되기도 한다.

설득의 대상도 언제나 인간인 것은 아니다. 글은 검색 엔진과 추천 알고리즘에 잘 노출되는 형태로 작성되고, 이력과 성과는 링크드인과 같은 SNS에서 쉽게 소비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된다. 논문도 인간 독자만을 향하지 않는다. 리뷰를 돕는 AI가 등장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도 AI가 깊숙이 들어온다. 언젠가는 연구자가 동료 연구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채택 결과와 리뷰 패턴을 학습한 모델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논문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연구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기보다, 기존의 평가 분포를 통과하는 최적화 문제가 될 수 있다. 모델이 선호할 만한 구조로 초록을 쓰고, 모델이 중요하다고 판단할 만한 기여를 강조하고, 모델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와 문장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미 검색 엔진 최적화가 글의 형식을 바꾸었듯이, AI 평가에 대한 최적화가 연구의 형식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는 타인의 주장에는 비교적 쉽게 의문을 품는다. 그 사람이 어떤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LLM이 내놓는 답변에는 그만큼의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전문적인 영역일수록 더 그렇다. 문장이 자연스럽고 논리가 정돈되어 있으면, 그 안에 어떤 생략과 편향이 숨어 있는지를 확인하기보다 일단 받아들이게 된다. LLM은 일반적인 인류의 생각과 축적된 데이터를 압축해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일반성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평균은 언제나 어떤 것을 포함하고 어떤 것을 지운다. 많이 기록된 관점은 더 강하게 남고, 충분히 기록되지 않은 경험은 약해진다. 이미 주류가 된 판단은 더욱 자연스럽게 재생산되고, 익숙하지 않은 문제 제기는 비정상적이거나 설득력이 부족한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평균 속에 숨어 있는 편향과 맞설 시간과 비판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책임과 감독이라는 명목 아래 검토하고 승인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깊이 판단하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검토할 능력도, 충분한 시간도, 문제가 있을 때 거부할 권한도 없는 사람이 마지막 승인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그것을 인간의 감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간이 루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인간이 사고하고 있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AI가 판단을 만들고, 인간이 그것을 승인하고, 조직은 인간의 검토를 거쳤다고 기록한다. 문제가 생기면 최종적으로 승인한 인간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판단의 주체와 책임의 주체가 분리되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보면서 때때로 인간의 감독이 책임을 다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책임의 외형을 유지하기 위한 절차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지금의 기업 AI 전략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많은 조직이 AIX를 이야기하고, 기존의 업무를 AI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그 목표를 들여다보면 무엇을 해결하려는지보다 AI를 적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앞서는 경우가 많다. 조직마다 사용하는 표현은 비슷해진다. LLM 기반 에이전트, 멀티모달 플랫폼, 업무 자동화, 생성형 AI 서비스와 같은 이름이 거의 모든 산업에서 반복된다. 그 결과 도메인 간의 차이는 표면적으로 옅어진 것처럼 보인다. 방송이든 금융이든 제조든 교육이든, 데모 화면만 보면 비슷한 모델에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붙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운영 단계로 들어가면 차이는 다시 선명해진다. 번역 모델이 자연스러운 영어 문장을 생성하는 것과, 해외 판매를 전제로 한 방송 자막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장면의 맥락과 화자의 관계를 이해해야 하고, 고유명사와 표현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하며, 오역이 콘텐츠의 의미와 판매 과정에 미칠 위험까지 고려해야 한다.

영상 보정 모델이 한 장의 얼굴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과, 실제 방송 영상에서 인물의 정체성과 피부 질감, 색상과 프레임 간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다르다. 단일 이미지에서는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가 영상에서는 미세한 떨림과 색 변화, 아티팩트로 나타날 수 있다. 자막 제거 모델이 한 프레임을 자연스럽게 채우는 것과, 긴 영상에서 움직이는 배경과 객체를 일관되게 복원하는 일도 같은 문제라고 할 수 없다. AI는 도메인의 차이를 없앤 것이 아니다. 데모에서는 그 차이를 잠시 가렸을 뿐이고, 실제 운영에서는 더 비싼 형태로 다시 드러낸다. 기반 모델이 비슷해질수록 차별성은 모델 자체보다 데이터와 평가, 운영 제약과 실패의 비용으로 이동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모델을 사용했는지가 아니라, 그 모델이 특정 환경에서 언제 실패하며 그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연구자의 역할이 답을 만드는 사람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사람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AI가 코드와 문서를 생성하고 실험의 일부를 대신할 수 있다면, 사람에게 남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을 문제로 정의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가정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지, 무엇을 성공으로 측정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가 나오면 현재의 접근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문제를 제대로 제기하는 것이 사업의 속도를 방해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술의 문제점을 분석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 실패 사례를 모으고, 조건을 분리하고, 원인을 검증해야 한다. 반면 얼기설기 만들어진 AI 서비스라도 빠르게 공개하면 눈에 보이는 결과가 생긴다. 뉴스가 나고, 사내 보고 자료가 만들어지며, 링크드인과 SNS에서 반응을 얻을 수 있다. 기술의 완성도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서비스 출시와 조회 수, 기사 수와 파트너십은 숫자로 표현하기 쉽다. 깊이 있는 문제 제기는 복잡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만든다. 현재의 성과가 생각보다 작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위험을 목록에 올린다. 문제를 잘 찾을수록 해야 할 일은 늘어나고, 출시 일정은 늦어지며, 경영진이 외부에 전달하고 싶은 단순한 서사는 복잡해진다. 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이 오히려 사업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서비스를 출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기업은 무한한 시간과 자원을 가진 연구 기관이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제품을 먼저 시장에 내놓고 사용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경우도 많다. 연구자 역시 기술적 순수성을 이유로 모든 위험을 제거하려 한다면 실행을 막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불완전한 제품을 실험으로 내놓는 것과, 불완전함을 감춘 채 성공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전자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시도다. 무엇이 작동하고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제한된 범위에서 실행한다. 후자는 불확실성을 해결하지 않은 채 성과라는 언어로 덮어버리는 일이다.

하입도 그 자체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관심은 예산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며, 조직의 관성을 움직인다. 좋은 서사는 기술이 성장할 기회를 제공한다. 문제는 하입이 더 나은 기술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술적 근거를 대신하는 결과가 될 때다. 사용자 반응이 있었다는 사실이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로 바뀌고,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사실이 지속 가능한 사업성을 증명하는 것처럼 사용된다.

이런 환경에서 깊이 있는 역량이 무시되는 것은 단순히 경영진이 기술을 몰라서만은 아니다. 조직이 보상하는 것과 연구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종종 기술의 완성도보다 가시성을 보상한다. 출시된 서비스에는 화면이 남고, 기사와 발표가 남으며, 누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설명하기 쉽다. 반면 문제를 미리 발견한 사람의 성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모델의 도입을 막았고, 오역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했으며, 운영 장애가 일어나기 전에 구조를 수정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출시는 사건이지만 예방은 비사건이다. 문제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증명하기는 어렵고, 그것이 누구의 판단 덕분이었는지 기록되는 경우도 드물다.

성과의 이익과 기술 부채의 비용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도 문제다. 지금 서비스를 출시한 사람은 현재의 평가와 관심을 얻는다. 반면 급하게 만든 구조의 유지보수 비용과 데이터 오염, 잘못된 약속과 신뢰 하락은 미래의 실무자와 운영 조직이 부담한다.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인 결정도, 특정 의사결정자의 임기와 평가 기준 안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일 수 있다. 이때 문제를 제기하는 연구자는 조직의 목표를 돕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성과라고 부르고 싶은 것을 성과라고 부르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보인다. 문제 제기의 내용이 틀려서가 아니라, 조직이 최적화하는 목표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붐이 만들어낸 수많은 일자리 속에서 연구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세상에는 여전히 깊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장기적인 연구와 기술적 신뢰를 존중하는 좋은 회사와 포지션이 존재한다. 다만 그런 조직은 많지 않고, 그 안에서도 모든 사람이 핵심적인 판단자가 될 수는 없다. 조직이 필요로 하는 최종 판단자의 수는 실행자의 수보다 훨씬 적다. AI 시장은 많은 연구자를 필요로 하는 방향보다, AI를 사용할 줄 아는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새로운 일자리는 프런티어 모델을 연구하는 역할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모델을 업무에 연결하고 서비스를 구성하며 조직에 도입하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모델을 직접 연구하는 사람보다 모델을 적용하고 통합하며 판매하고 운영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능력은 분명 중요하다. 러닝 커브가 빠른 사람은 변화가 큰 환경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빠르게 배우는 능력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능력은 서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API와 프레임워크를 빠르게 사용하는 능력만으로 경쟁한다면, 그 능력은 다음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다시 초기화된다. 모두가 비슷한 속도로 도구를 배울 수 있게 되면 차별성도 빠르게 사라진다. 반면 깊이 있는 지식은 추상화가 깨지는 순간에 드러난다. 모델이 예상과 다르게 동작할 때, 데이터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때, 공개 벤치마크와 실제 서비스의 결과가 다를 때, 비용과 지연시간과 보안의 문제가 한꺼번에 등장할 때 필요해진다. AI가 구현을 대신할수록 기술적 깊이는 덜 필요한 것이 아니라, AI가 만든 결과가 언제 틀리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다만 깊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직과 시장이 그 깊이를 저절로 알아봐 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보이지 않는 전문성은 조직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취급될 때가 많다. 깊이를 실제 의사결정에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야 한다. 단순히 모델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어떤 조건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 문제가 사용자와 사업에 어떤 비용을 만드는지, 현재의 의사결정에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가장 작은 검증 실험은 무엇인지, 어떤 결과가 나오면 계속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면 중단할지를 제시해야 한다.

연구자는 문제를 말하는 사람에서 문제의 비용과 선택지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이동해야 한다.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까지는 지금 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위험하며 무엇을 확인하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술적 우려를 사업의 언어로 번역하고, 사업의 요구를 검증 가능한 기술적 질문으로 바꾸는 역할이다.

조직에서 발언권은 통찰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데이터와 시스템, 지표와 결과에 대한 소유권이 있을 때 더 강해진다. 번역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보다, 번역 평가 데이터를 만들고 오류 유형을 정의하며 배포 기준과 모니터링 체계를 소유하는 사람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영상 결과에 아티팩트가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어떤 조건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재현하고 품질 기준과 실패 대응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추상적인 문제 제시자보다, 판단이 필요한 구체적인 시스템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모델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데이터가 들어오고 결과가 사용되는 전체 과정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실패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조직이 문제를 듣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문제의 조건과 비용, 해결책과 대안을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경영 주체가 계속해서 가시성과 하입만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연구자의 소통 능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업관과 시간축의 충돌이다. 한쪽은 기술적 신뢰와 축적을 장기적인 사업 가치로 보고, 다른 쪽은 현재의 관심과 평가를 더 중요한 가치로 본다. 어느 쪽도 순수하게 기술적인 판단은 아니다. 결국 어떤 시점의 누구에게 돌아가는 이익을 기업의 가치라고 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개인이 조직 전체의 보상 구조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으려 하면 쉽게 소진된다. 그래서 나는 조직의 보상함수와 내 커리어의 보상함수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는 출시와 일정, 사용자 반응과 사업 성과가 중요하다. 그것을 무시한 채 깊이만을 주장하는 연구자는 조직에서 오래 일하기 어렵다. 나 역시 결과를 만들고, 다른 사람과 협업하며, 내가 가진 지식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회사가 당장 보상하는 것만을 나의 성장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 내가 무엇을 출시했는지만큼, 어떤 문제를 이전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중요하다. 어떤 시스템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 보았는지, 어떤 실패를 재현하고 원인을 밝혀냈는지, 재사용 가능한 데이터와 평가 체계를 남겼는지, 사용하는 모델의 이름이 바뀌어도 유지되는 전문성이 생겼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좋은 조직에서는 회사의 성과와 개인의 성장이 함께 움직인다. 서비스를 만들면서 깊이도 쌓이고, 사업 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기술적 질문이 생긴다. 하지만 좋지 않은 환경에서는 조직의 장부만 늘어난다. 빠르게 데모를 만들고, 새로운 모델을 붙이고, 발표 자료를 정리하지만, 개인에게는 특정 시점의 유행을 따라간 경험만 남는다. 그런 경험도 처음에는 필요하다. 기술을 빠르게 구현하는 법, 조직이 어떤 메시지에 반응하는지, 실제 서비스가 배포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프로젝트가 반복되는데도 나의 판단 범위와 소유권이 넓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험이 아니라 반복일 수 있다.

나는 주기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배우는 것은 다음 모델이 등장해도 남아 있을까. 프로젝트가 끝날 때 데이터와 평가 기준, 시스템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고 있을까. 나는 점점 더 중요한 판단을 맡게 되고 있는가, 아니면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그럴듯한 데모만 만들도록 요구받고 있는가. 이 조직 밖에서도 설명할 수 있는 성과와 역량이 남고 있는가.

깊이를 가시적으로 만드는 일도 결국 내 책임이다. 시장은 진실을 자동으로 보상하지 않는다. 정확한 판단이 더 단순하고 잘 포장된 서사를 언제나 이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술적 연극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보상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설득도 연구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근거보다 큰 확신을 팔아서는 안 된다. 깊이 있는 연구자는 재현 가능한 실험과 평가 데이터, 실패 사례와 운영 지표, 기술적 의사결정의 기록으로 자신의 판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이해가 어떤 더 나은 판단과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남겨야 한다.

모든 문제를 같은 강도로 싸울 필요도 없다. 되돌릴 수 있고 비용이 작은 결정이라면 불완전하더라도 먼저 실행해볼 수 있다. 불확실하지만 측정할 수 있는 문제라면 제한된 범위에서 실험하고 데이터를 모으면 된다. 연구자의 직감과 경영진의 확신이 회의실에서 끝없이 충돌하기보다, 어떤 결과가 나오면 누구의 가설이 틀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편이 낫다.

하지만 되돌리기 어렵고 손실이 큰 결정은 다르다. 검증되지 않은 성능을 외부에 사실처럼 약속하거나, 오역과 왜곡이 실제 콘텐츠와 사용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배포하거나, 내가 확인하지 않은 결과에 내 이름과 전문성을 걸도록 요구받는다면 명확히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판단의 근거와 책임의 범위를 문서로 남겨야 한다. 모든 기술 부채를 막을 수는 없지만, 타인의 잘못된 판단에 내 전문적 신뢰까지 담보로 제공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된다면 떠나는 선택도 생각해야 한다. 부정적인 실험 결과가 숨겨지고, 검증되지 않은 성능을 외부에 사실처럼 말하도록 요구받으며, 문제를 발견한 사람이 오히려 책임을 지고 문제를 만든 사람은 성과를 가져가는 조직이 있을 수 있다. 평가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모델을 개선하는 대신 지표를 바꾸고, 기술 부채를 해결하는 시점은 항상 다음 분기로 미루며, 여러 프로젝트를 반복해도 데이터와 평가 체계와 인프라가 축적되지 않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조직을 바꾸는 것만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한 조직의 AI 전략보다 개인의 커리어가 더 길 수 있다. 반대로 기술적 연극이 끝나고 시장이 본질을 알아봐 줄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개인의 중요한 경력 시기가 너무 짧을 수도 있다. 떠나는 선택은 자신의 전문적 기준과 장기적인 선택지를 보존하는 결정일 수 있다. 연구자의 마지막 자산은 특정 회사에서 받은 직함보다, 잘못된 보상 구조에 자신의 판단까지 종속시키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연구자라는 이름 자체에 이전만큼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순수하게 연구만을 수행하는 자리는 더 적어질 수도 있다. 연구는 소수의 프런티어 조직에서는 독립된 직무로 남겠지만,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엔지니어링과 제품 개발, 운영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내게는 연구자라는 직함보다 연구하는 방식을 잃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다. 가설을 세우고, 반증 가능한 조건을 만들고, 실제 데이터로 확인하고, 실패한 결과와 모르는 부분을 숨기지 않는 태도다.

나도 앞으로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논문을 읽고, 코드를 작성하고, 실험을 설계하고, 문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AI가 제공하는 능력을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실행을 위임하는 일과 판단을 위임하는 일은 구분하고 싶다. AI가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줄수록, 나는 무엇을 믿을지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AI가 더 빠르게 코드를 작성할수록, 그 코드가 어떤 가정 위에 놓여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AI가 더 그럴듯한 설명을 제공할수록, 설명의 자연스러움과 사실의 정확성을 구분해야 한다. AI가 논문을 평가해줄수록, 그 평가가 과거의 선호를 모방하는 것인지 새로운 지식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인지 의심해야 한다.

AI는 생성의 비용을 낮췄지만 무엇이 맞는지 검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비용까지 낮추지는 않았다. 생성되는 것이 많아질수록 검토할 것도 늘었다. 생성은 싸지고, 판단은 비싸졌다. 그렇다면 연구자의 가치는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남들이 놓친 문제를 발견하고, 모호한 불편함을 검증 가능한 질문으로 바꾸며, 어떤 결과를 믿어도 되는지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모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만큼,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정확히 말하는 일도 필요하다.

다만 문제를 발견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문제의 비용과 선택지를 설계하고, 조직이 판단할 수 있는 형태의 증거를 만들며, 가능하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까지 소유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도 판단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조직이라면, 그곳을 떠날 수 있을 만큼의 전문성과 선택지를 축적해야 한다.

나는 아직 우리가 연구로 승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균적인 답이 보지 못하는 문제를 찾아내고, 불확실성을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바꾸며,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는 방식이다. AI보다 더 많은 논문을 쓰거나 더 빠르게 코드를 만드는 경쟁과는 조금 다르다. AI가 연구의 많은 절차를 대신할 수는 있어도, 무엇을 의심할지와 무엇에 책임질지는 저절로 결정하지 못한다. 연구자는 더 이상 답을 독점하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대신 사회와 조직이 무엇을 믿어도 되는지를 검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앞으로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연구자라는 자리보다, 쉽게 납득하지 않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도에 판단까지 맡기지 않는 것, 조직이 원하는 서사를 이해하면서도 사실의 경계를 넘지 않는 것, 당장의 성과를 만들면서도 다음에도 남을 지식과 시스템을 축적하는 것.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깊이보다 속도가 보상되는 순간은 계속될 것이고, 문제를 발견한 사람이 문제를 만든 사람처럼 취급되는 일도 반복될 것이다. 때로는 내가 지나치게 신중한 것인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하나는 잊지 않고 싶다. 연구는 어떤 답을 믿어도 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검증한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에 가깝다. AI가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갈수록, 나는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을 끝까지 의심했고 무엇에 책임졌는가로 나의 일을 설명하고 싶다.